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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한가위를 즈음하여 아내와 함께 열흘정도 강원도 영월을 시작으로 남한강 따라  내려가다 옥동천을 거슬러 김삿갓계곡을 지나 마구령을 넘고
천년 넘는 고찰 부석사를 둘러보고, 기암괴석이 일품인 청송주왕산, 주산지, 얼음골, 옥계계곡, 포항을 거쳐 경주에서 1차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경주에서 대구 함양 거쳐 생초면부터 다시 지리산 둘레를(요즘 TV나 인터넷에 떠도는 둘레길과 전혀 상관없는, 말 그대로 지리산 둘레) 자전거로 지인들과 함께 한 여행기입니다.

 

자전거 여행의 시작

결혼 후 첫 장거리 자전거 여행인데, 기상청의 주말 일기예보가 발목을 잡는다.
떠나기 하루 전 금요일밤까지 떠날까 말까 고민...
모처럼 여행인데 그냥 비가 와도 떠나자 잠정 결정
새벽 3시까지 부랴 부랴 짐 싸고 토요일 날씨가 부디 맑기만을 고대했건만..
밤새 그리고 새벽내내 이어서 아침내내 억쑤로 쏟아지는 비, 비가 와도 떠나려 했으나, 그러기에는 내려도 너무 많이 내린다.
작파하고 늘어지게 자는데, 아는 분이 영월까지 태워 주신다는 말에 등 떠밀리다시피 길을 나선다.
오후 늦게사 서울 출발 해가 진 깜깜한 저녁에야 영월 인근에 들어서니, 비는 주적 주적
집 나온게 벌써 후회된다. 왜 나왔을까?
일단 후퇴 제천의 아는 형님댁에 하룻밤 신세지고, 내일은 개겠지!
어쩌면 여행은 막연한 바램에서 비롯된 바보 같은 짓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여름내내 주말마다 비가 내리더니 논의 물이 차차 말라 벼가 익어가는 가을인데도 그칠 줄을 모른다.
이제 장마라는 말보다는 우기라는 말이 맞을 듯 싶다. 가끔 쨍쨍한 오후에 내리는 비는 소나기보다 스콜이 맞을 것이다. 
그래도 본격적으로 자전거 타기를 시작하는 일요일은 천만다행 비가 그쳤다.
파란 가을 하늘은 아니더래도, 비가 오지 않는 것만도 어딘가.
그동안 무던히도 내린 비로 좀 낮은 다리는 잠수교마냥 잠기었고
물이 좀 모인다 싶은 골은 여기 저기 폭포요.
길은 갑자기 강으로 숨어 들어간다.

 

 

 

온몸이 오싹할 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맴돌던 김삿갓 계곡을 벗어나 어느 산골의 어스름
해가 지기전 야영준비를 하려 했으나,
지도를 보니 마구령 오르막이 본격적으로 시작 되는 곳에 "주막거리"라는 지명에 끌린다.
아내와 작당.." 거기 가면 왠지 술도 팔고, 국밥도 팔 것 같이 않냐?" 
아내를 꼬드겨 더 가다 보니 해가 져 버렸다.
해가 지면 자전거 여행자는 불안해 진다.
뭐, 옛날 옛적처럼 아무리 깊은 산골이더라도 인간을 해할 범새끼 하나 산적 하나 없건만,
풀칠이라도 해서  허기를 잠재우고 이슬이라도 피할 헝겁데기라도 덮고 눕기 전까지는 아직 오늘은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장기간 자전거 여행을 하다보니 매일 반복되서 좀 익숙해졌을뿐 그 불안을 완전히 떨쳐 낼 수는 없다.
매번 낯설고, 과연 오늘은 어디서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런지, 끼니나 제대로 떼울 수 있을런지... 

 

 

 

어둠속을 올라 간 주막거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아래마을에 구멍가게가 아직 문을 열고 있어서.
염치 불구하고 자리 좀 빌려 두부와 김치, 라면을 안주 삼아 술 한 잔 걸치니 나름 셀프 주막이 차려졌다.
끼니는 떼웠는데 몸은 어디에 눕힐까?

 

 

 

본격적으로 시작된 캠핑? 야영? 노숙?
그래도 가게 주인이 친절하게도 정자를 빌려주어 어제 밤 비를 피할 수 있었지만.
새벽부터 비인지 안개인지 주적 주적 여행자의 발길을 잡는다.
머물자니 정자 밑에서 뭐하나...부지런한 시골분들 눈길도 부담스럽다.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는 말이있지 않던가?
대략 비옷으로 무장하고 마구령으로 들어선다.
마구령 올라가는 산길이 짙게 우거져 하늘 보기가 힘들다.
안개비가 몸에 닿을 틈도 없다.

 

 

 
마구령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잠도 설친데다.
새벽부터 안개비 속에 가픈 오르막을 오르다 보니 우리도 마구령도 아직 잠이 덜 깼다.
마구령을 넘으니 언제 그랬냐 싶게 화창하다.


 

 

 

 

부석사의 운치
국보와 보물들이 여기 저기 참 많이도 숨겨져 있는 절,
http://www.pusoksa.org/
나무기둥하나 석조물마다 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마구령을 넘어서부터 여기 저기 온통 사과 과수원이다.
사과도 제철이라 보기만해도 입에 침이 고인다.
사과 몇개 사려고 과수원에 들렸더니 아저씨가 나무 궤짝에 열심히 사과를 담고 계신다.
가격을 물으니 그냥 먹고 가란다. 더군다나 넣어 갈 수 있는 만큼 마음껏 넣어가라신다.
사과농사를 지으면서 정작 당신은 사과를 별로 안 좋아한다고...
까치 먹은 사과를 아내에게 깍아주니 자기가 지금까지 먹은 사과 중 제일맛나다고 신났다.
이런 저런 애기 나누고, 너무 맛있어서 나중에 택배로 살 수 있는지 여쮜니...안 하신단다. 욕심 참 없으시다. 
잠시 대화 였지만 인정이 넘치는 온화한 인생관이 말씀에도 얼굴에도 그대로 묻어 있다.
아내에게 나도 늙어서 저 아저씨 같은 인상을 묻어 났으면 좋겠다고 했더니..그럴러면 정신 수양 엄청 해야 겠다며 웃는다..ㅎㅎㅎ
부사 익을 무렵 아저씨께 사과 사러 가야겠다.

 

 

 

 순흥묵밥, 경상도의 맛집으로 추천 받은집.
허기가 반찬이라고, 열심히 자전거 타고 나면 무언들 맛이 없을 소냐!
하지만, 나에게 맛집기행은 마치 숨겨진 보물찾기 같은 놓칠 수 없는 즐거움이다.
맛도 맛이지만 정성어린 요리를 대접 받았을 때의 따스함은 힘든 여행도 잠시 잊게 만든다.

이집 메뉴는 오로지 묵밥 한가지
따라서 주문도 "뭐 드시겠어요?"가 아니라.."몇개 드릴까요?"다.
맛은 그냥 평범한 수준. 묵의 메밀 함유도 적고, 밑반찬도 그저 그렇다. 김치는 영.. 맛만 보고 젓가락이 다시 가지 않았다.
하지만 뭐랄까...분위기도 시골답게 시골스럽고, 손님을 대접하는 정성이 잔뜩 느껴져서인지 국물까지 쓰싹 비웠다.

 

 

 

맛보다는 멋이 있는 묵밥집,
머위 덩쿨아래 주인을 기다리는 애마들

 

그리고, 가까운 곳에 또 다른 추천 맛집.
영주시내 중앙분식 쫄면.
처음에 어느 분이 쫄면을 추천했을 때 다소 놀랐다.
쫄면이라니. 경상도에는 그렇게 맛집이 없나??
그런데, 연이어 네 다섯분이 적극 추천들어간다..어라???
왠간하면 자전거 여행중에는 큰 도시는 피해가고 안 들어가는데.쫄면 먹으려고 영주시내를 들어 갔다.
그렇게 추천들 할 정도이면 최소한 회 몇조각은 들어 있을지도 몰라...추측하면서, 가격도 5000원이나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음. 역시나 쫄면은 쫄면이었다. 정말 특별할 게 하나 없는 그냥 면발 좋은 비싼 쫄면.
여행 떠나기 전 경상도 지역 맛집 추천 질문을 드렸더니 다들.기대하지 말랐는데...심지어 그 지방에 사시는 분들까지.느낌이 온다.


 

 

주왕산 
13년 전 자전거 전국일주하면서 와 보곤 처음이다. 
산은 그대로인데, 아내와 함께이어서 인지 신선하고 새롭다.

 

 

 

 참으로 간만에 보여주는 청명한 파란 하늘

 

 

 

 TV의 모 여행프로그램 때문에 출현 했다 싶은 곳은 여행객들로 붐비고,
한가롭다 못해 설렁하기까지 했던 야영장은 명품 캠핑족들로 부쩍되서 한적함을 빼앗긴 것 같아 내심 못마땅한데.
그래도 그 덕택인지 어쩐지 캠핑 문화 붐으로 야영장들도 시설이 예전에 비해 훨씬 좋아졌다.
잘 정돈된 야영장에,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샤워 시설에 온수가 나오지 않나, 깨끗한 취사시설
심지어 이 야영장에는 조그마한 이동식 도서관까지.
언제 우리가 넓은 정원과 아름다운 풍경아래 늘어질 수 있겠나.
나무 그늘 아래 책 한권 빌리고, 시원한 맥주 받아다 주거니 받거니
그래 오늘은 여기서 하루 더 머물자.

 

 책을 읽다가 심심해서 해질 무렵 주왕산 산책에 나서다.

점과 선 여행.
아내는 머무르는 점 여행을 선호한다.
그러나, 나는 길위에서 보내는 선 여행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오랜 기간 해외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도 부득이 비가 온다든지, 비행기나 배등의 연계 교통편을 기다린다든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한곳에 이틀이상 머무른 적이 극히 드물다.
배낭여행자들의 장기피난처로 유명한 파키스탄 훈자마을에서도 고작 이틀 머물다 떠나왔다.
그러다 보니 아내는 항상 힘들어 하고, 난 지루해 하고, 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점과 선여행의 조화를 이루게 된 듯 싶다.
사실 선은 무수히 많은 점들의 집합인데 말이다.

 

 

 

 

이번 여행은 완전무장이다.
2인용텐트, 매트리스*2, 침낭*2, 취사도구, 열흘동안 번갈아입을 옷, 카메라기타등등...
집에 나두고 온 물건들이 아쉽기도 하지만, 여행하는데 혹은 더 나아가 살아 가는데 구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도 없는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쓰잘데 없이 너무나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가을빛이 짙게 물드면 더욱 아름다운 주왕산을 뒤로 하고

 

 

 

주산지
이제는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의 촬영지로 유명해져서 여행객들로 상당히 붐빈다고 한다.
다행히 비수기 이른 아침인지라 아내라 한가로이 거닐다. 아담한 크기에 물속에 밑둥을 감춘 왕버들 나무 덕택에 묘한 아름다운 풍경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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