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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에서 아내와의 자전거여행을 마치고 대구 함양거처 앞으로 3박4일을 함께할  지인(박선배,김선배)들을 맞으러 생초로 이동했다
우리가 생초에서 도착한 후 채 10여분도 지나지 않아 서울에서 출발한 두 선배가 도착했다. 혹여 우리나 그쪽이 늦어 져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해가 져 버리기라도 하면 어쩌나 내심 걱정했는데 해도 한 두어 시간의 여유가 있다.
지리산 둘레 자전거 여행모의를 위해 며칠전 만남이 있었는데도 왜그리 반가운지.
노숙에 가까운 일주일간의 여행으로 많이 지치고, 선크림을 미쳐 챙기지 못해 얼굴에 팬더기색이 돌고, 그제 저녁이후 제대로 씻지도 못해 꾀재재 작렬 모드인데도 아내는 반가움을 넘어 마치 재난에서 구조라도 된듯 신이 났다  
아내는 3박4일동안 자기를 희생하여 김선배 차로 도움 주기로 자기 멋대로 이미 결정한 상태...

 

 

<첫날 민박집 앞 멋진 풍경>
생초면이 관광지도 아니고 시골면 소재지인지라 근처에 이렇다할 숙소가 딱히 없는데 마침 추석맞이 마을 정리정돈하러 풀 베러 온 유쾌한 아저씨의 덕택으로 너무나 멋진 숙소를 저렴하게 빌리게 되었다.
서울서 살다 아저씨따라 몇 해전 귀경하여 농사를 짓고 계신 아주머니, 이래저래 시골 일이 힘 들어도 강가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지겹도록 보셨을 텐데도 근심 걱정이 강물 따라 흘러 간단다.
간만에 수영 하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으나 동작이 잽싼 김 선배 어느새 숯불에 삼겹살 굽고 있다.
수영대신 간만에 뜨신 물에 샤워 했더니 피로도 풀리고, 밥도 맛있고, 고기도 살살 녹고, 술은 술술 넘어가고....
아, 마누라, 이제 우리도 제대로 먹고, 자고, 씻을 수 있는 건가?

 

 

 

추석 한가위를 코 앞에 둔 비수기라 한적하기 그지 없는 아침

 

 

짐을 떼고 달리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다.
짐.........................
짐을 내려 놓으면 이렇게 편안한 것을.
뻔한 진리인 것을 알지만서도......

자전거 여행의 짐 싸기에 관하여는 자타공인 최고라고 자부하는데...
짐은 잘 챙기기 보다 필요없는 물건을 빼는 게 중요하다.
어쩌면 우리는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인생의 짐들을 짊어지고 가고 있는것은 아닌가?

 

 

멋진 풍경에서 DSLR의 배터리가 다 되 버렸다. 아쉽지만 똑딱이로 더 가을이 깊어 황금빛으로 단풍으로 물든 환상적인 들녁을 그리며 담아본다.

 

 

 

아무리 고개가 높고 빡세고 힘들더라도
오르막 넘어에는 항상 내리막이 있기마련...


 

 

 

<지리산 둘레길의 첫 고개인 밤머리재에서, 함께 이기에 더욱 아름다운 풍경>

구지 혼자만의 여행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데,
그동안의 내 여행경로가 그닥 대중적이지 않아서인지,
주변에 함께 여행할 친구를 구해봐도 체력 시간 이런 저런 사정으로 맞추기 참 힘들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매번 혼자 떠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언제 부터 인지 혼자 여행하는 것이 익숙해 져 버렸다.

혼자이면 혼자인데로 내 멋대로의 자유로움이 좋고
여럿이면 여럿인데로 함께 멋진 길을 달리고 맛있는 음식을 함께 즐기며 마시고 웃고 떠들고 서로를 배려하는 과정속에서 배움이 값지다.
박선배 김선배는 올 초 봄 소식을 찾아 떠난 남도여행에 이어 두번째 동행이다. 다들 성격이 무던하여 남도 여행중에 다행히 얼굴 붉히는 일 한 번 없이 즐겁게 여행을 마무리 지었는데 이번에도 즐겁게~~~

 

 

 

중앙의 봉우리가 지리산 천왕봉
오른쪽 봉우리는 세석평전 촛대봉 아닐런지?
참으로 편안한 능선이다.

 

 

 

 

<내원사>
어렸을 적부터 산을 좋아하여 무던히도 여러 산을 올랐는데
그 중에서도 왠지 모르게 유난히도 포근한 지리산이 좋아 일 년에 서너 번은 다녀오곤 했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왠간한 계곡 절은 (종주,칠선,피아골, 뱀사골, 거림, 불일폭포, 세석, 한신, 치밭목, 달궁, 대성리, 광대골등등) 두루 둘러 본 것 같은데 내원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보물(삼층석탑과 비로자나불)이 두점 있으나 워낙히 지리산 자락에 유명한 절이 많고, 주 능선 코스에서 멀리 떨어진 (싸리봉에서 길이 잘 닦여 있지 않은 황금능선을 따라 내려와야 한다) 자리에 위치해 잘 알려지지 않아서인지 사람 하나 없다.
한적한 절은 온전히 우리 독차지다.

 

 

<회남재에서 내려다 본 평사리> 

지리산 둘레길에는 평지가 없다..
올라가거나 내려 가거나.
밤머리재를 넘은 후 시천까지 바닥을 친후 은근한 오르막이 시작된다.
가을인데도 한 낮 더위는 말 그대로 내려 꽂는 것 같다. 
뙤 약볕아래 한 참을 올라 지치기 직전 다행히 센스있는 아내가 마치 우리를 위해 지워 놓은 정자라고 착각할 정도로 좋은 명당 자리를 잡고. 밥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바로 아래 계곡에서 몸 좀 식히고, 배부르게 밥해 먹고 시원한 맥주까지 한 잔씩 걸치니, 와! 에헤라 디여 노다가세!
다들 나무 그늘 평상에 누워 살랑 살랑 부는 바람속에 낮잠 한 숨
한 숨들 자고 나니 해가 좀 누그러 졌지만 은근히 가을 해가 솔찬히 남았다.
오늘 청학동에서 잘까도 싶었지만 비포장 회남재를 넘기로 한다.

 

 

 

회남재를 넘으면 소설 '토지"의 배경으로 유명한 악양면 평사리
팔로 보담은 듯 산으로 둘러 싸여 있고, 앞 쪽에는 맑은 섬진강이 흐르고 구지 풍수지리가가 아니더라도 명당이로다
다른 농촌 풍경과 달리 마을과 마을이 가깝게 옹기 종기 모여 있고 동네마다 노인들뿐만 아니라 애들도 뛰놀고 생명력이 넘친다.

 

 

<숙소에서 바라본 사연 많은 저녁 풍경, 여행 내내 여행이 끝나고도 안주거리가 되었던 오늘의 숙소>

회남재를 넘고나니 해가 얼마남지 않아 오늘은 악양면에 묵기로 하고 숙소를  찾다가 각자 흩어 졌는데.
큰 길에 벗어난 저만치 언덕배기에 자리 하고 있는 황토방이 내 눈에 확 들어온다.
 오늘은 저기에서 자야 겠다 싶어 곧장 올라보니 시설도 잘되있지만 막 넘어가는 저녁 햇살에 물든 건너편 산과 마을이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마치 예전에 초모랑마(에베레스트) 트레킹 하면서 보았던 그런 평화로운 풍경이다.
두말 할 것 없다. 오늘은 무조건 여기서 자야 겠다..
이런 풍경을 나 혼자 담기 아까워 빨랑 올라 오라고 전화 하는데...다들 어째 시큰둥하다.
다들 지쳐서 이 짧은 오르막도 오르기도 힘들어서 그러나
해가 져 버리면 이 멋진 풍경을 아까워서 어쩌나...
기다리다 지쳐 내가 다시 내려갔는데 도대체 다들 어디에 있는 건지...
다시 전화하고 재촉에도 불구하고 한 시간 넘게 지체하여 해가 저 산 넘어로 꼴까닥 한 다음에야 만나게 되었다.
나는 나대로 그들은 그들대로 일촉즉발 긴장의 순간...다행히 내가 정한 숙소에 다들 너무나 흡족해 일순간에 풀어지기는 했지만.

나중에사 각자 사연을 푸는데 이 동네에는 똑같은 이름의 항토방 민박이 한채 또 있는데 다들 내가 말한 황토방 민박이 아니라 다른 항토방(B)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른 황토방(B)도 그게 말 하자면 오르막만 10리정도 되는 구석진 자리에 있어 찾아가기도 불편하고 풍경도 그저 그렇다고
하루종일 힘든 고개 두개나 넘어 지쳤는데...10리 오르막을 오르고 싶었겠는가?
그래도 내가 워낙 강하게 주장하고 나오니 다들 어쩔 수 없이 다른 황토방(B)까지 투덜 투덜 대면서 올라 갔다가 허탕치고 온거다. 하하하.

나중에 들은 애기로는 성격좋기로 소문난 박선배 눈에서 레이져 빔까지 뿜어져 나왔다고...하하하 

어쩌면 오해는 단순하게도 가장 기본적인 소통의 문제
다행히도 함께한 이들과 잠시 소통에 착오가 있어도 다들 성격이 무던한데다 서로 진정을 알아주고 참고 웃어 줄 수 있는 여유가 있기에 즐겁다.

'소통'하면 떠 오르는 이명박 정부
반대여론이나 분쟁이 생길 때마다 매번 소통의 문제라고 하는데...
귀를 막고 국민의 소리는 당췌 들으려고 하지 않으면서 언론장악을 통해 진실을 왜곡 여론조작이나 하면서 소통을 말하다니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악양면 평사리 들녁

 

 

교회?성당? 
종교시설이 이처럼 좀 소박했으면 좋겠다. 일요일마다 주변 교통혼잡을 일으키지도 않겠지...
소망교회처럼 정치인들로 우글거리지도 않겠지...

 

 

 

최참판댁 대문에서 바라본 들녘,  들판 한 가운데 다정하게 서 있는 부부송

 

  

<최참판댁 최서희 별당>
박경리의 "토지"가 워낙 묘사가 뛰어나다보니.
마치 이 최참판댁이 소설이 쓰여지기 전에 건축되고, 이를 배경으로 소설이 쓰여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운조루>
차가 서포트되니 너무나 편하다.
평사리에서 자전거 여행답지 않게 쇼핑도 하고
아내가 미리 목 좋은 곳에 자리 펴고 밥 해놓고 기다리고...

평사리에서 구례쪽으로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토지면 터 좋은 곳에 운조루가 있다.
최참판댁이 소설이 유명해진 이후에 건축된 허구의 고택이라면
운조루야 말로 진정한 고택, 현재도 유씨 종가가 살고 있다. 
취미중에 하나가 목공이다 보니 통으로 짠 문짝이 눈에 들어온다.
저정도 넓은 판재를 얻으려면 원목은 얼마나 두꺼웠을까? 
문짝 하나가 저 정도이니 99칸 집을 지을 때 얼마나 큰 나무들이 베어지고 쓰였을까?
그 규모를 상상하기도 힘들다.

 

 

이번 둘레길 여행에서 제일 힘들 성상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방광마을 .
동네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
그래서 찾아보니

○ 마을형성 조선 선조 25년 임진왜란때 남양홍씨가 피신하여 거주한 이후 큰마을이 형성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지명유래 본 마을에 판관이 살았다하여 판관이 팡괭이 그리고 다시 방광으로 변하였다 한다. 광무원년(1897)에 구례군 광의면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라 개칭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전설 지리산 우번대(牛bj臺)라는 암자에 사미스님과 노승이 살았는데 어느날 천은사 뒤 계곡을 오르던 중 사미스님이 남의 밭에서 조 세알을 손에 쥔 것을 본 노승이 「너는 주인이 주지 않은 조를 가졌으니 주인집에서 3년간 일을 해 빚을 갚아라」고 말한 뒤 소로 변신 시키고 떠나버렸는데 밭주인이 소를 발견했는데 웬일인지 그 소가 집에까지 따라오더니 여물대신 밥만 먹고살았는데 쇠똥이 땅에 떨어지면 빚을 내면서 곡식이 잘 자랐다하여 방광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전설이 있다.

 

 

 

<성삼재에서 바라본 달궁>

방광마을에서 콜라 한캔씩 들이키고...각자 페이스대로 올라가기로 한다.
내게 성삼재는 이번이 네번째, 포기 한 적은 없지만 매번 힘들어서 중간에 쉬곤했는데...
한 번쯤은 쉬지 않고 오르고 싶었다. 
다리는 후들 후들 열기가 다 빠져 나가는 듯 얼굴이 붉게 달아 오른다.


나는 쉬지 않고 앞으로 매몰차게 가버린다...

오랜 운동으로 다져진 체력이겠지만 가늠할 수 없는 끝없는 오르막을 홀로 오르던 박선배는 쉽지 않았으리...
중간쯤 차로 뒤 따라오던 아내를 만나 잠시 쉬며 '어떻게 이렇게 힘든데 따라다니냐'' 참 징하다'등등 한풀이를 늘어 놓으셨다는데
성삼재에 오르는 순간 '아~이래서 다니나보다~'를 느꼈다며 그간의 고생은 모두 있고 너무나 좋아 하신다.
천상 당신은 타고난 자전거 여행자요....다음에는 아무래도 좀 더 힘든 고개를 알아봐야겠다...

 

 

이 정도는 되야 산채정식이라고 할 수 있겠지(아직 다 차려지지 않았지만)

 

 

이번 여행의 마지막 오르막 정령치....
그래도 어제 성삼재를 넘어 심원마을부터 시작하여 한결 수월하다
반대로 남원쪽에서 시작하여 육모정 정령치 성삼재 순으로 코스를 잡았다면 다들 기겁했을게다.
가끔 반대쪽으로 해서 정령치를 넘기도 했는데, 정말이지 거대한 산이 앞을 가로 막아 더이상 굴러지지 않는 느낌이다.

 

 

 

정령치에 바라본 달궁
정령치는 올때 마다 이 처럼 안개가 자욱하다

마음 같아서는 정령치에시 운봉으로 내려가 엄천강을 따라 다시 생초로 가서 지리산 둘레를 온전히 마무리 짓고 싶으나

낼 모레 추석인데...아내도 며느리로서 염치도 있고 하니 아쉽지만 여기서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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