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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을 제대로 못 먹고, 못 자고, 못씻고
온 몸이 엉망이다.
오늘은 하루 웬종일 아무것도 안하리라.

남으로 난 창으로 해가 들어올 때까지 늦잠자고
따스하게 데워진 침낭 속을 나가기 싫어서 게으름 좀 피우고
아침을 해 먹고는 다시 침대에 누워 책 좀 보고
햇빛 좀 쬐다가 부침개 해 먹고.
짐 먼지 털다가 밀린 빨래 좀 하고
또 햇빛 바라기 하다가 카메라 먼지 좀 털고
가족에게 국제 전화 하려는데 동네를 다 돌아 다녀도 국제전화는 안되서 주인 집 컴퓨터 빌려 인내심 끝에 짧은 안부 남기고
하루 종일 빈둥빈둥 편안히 쉬었다.
하늘은 여전히 새파랗고 시간은 잘 도 간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이 날은 사진 한 장 없다.

하루를 편안히 쉬고 다시 길을 나선다.
하늘은 여전히 파랗고, 조용하다.

 

하지만 오늘은 첫 출발부터 오전내내 은근한 오르막이다.

 

녀석, 멀리서부터 고함 치며 신나서 동무들이랑 따라 온다.
나랑 은근히 자전거 경주를 하려 한다.
이렇땐 좀 곤란하다. 어린 새싹의 기를 키워주어야 하는지, 한 수 가르쳐 주어야 하는지
나두 어린애처럼 발끈해서 힘 안드는 척 기어비 좀 올리고 속도 좀 내준다.ㅋㅋㅋ
녀석 힘들어서 떨어 질 줄 알았는데, 끝까지 따라올 기세다.ㅎㅎㅎ
더 이상 오버 했다가는 모처럼 잘 쉬고 출발한 건데 숨 넘어 갈 수도 있다.
그냥 달래서 보낸다.
자전거 하나로도 이렇게 말하나 통하지 않은 어린 소년과 친구가 되었다.

 

상퇴에서 점심 먹고 고개 하나 넘고부터는 내리막이 시작 된다.
한나절을 내려와도 못 다 끝이 없는 내리막이 있다는 것을 이때까지는 몰랐다.

 

 

 중간에 거꾸로 거슬러 올라 오는 중국 여행자를 만나다.
이틀동안 계속 오르막을 올라 왔단다.
지긋 지긋 하단다.
그 말인 즉은 ㅎㅎㅎ

 

경사도 완만하고 확 트여서 그냥 바람의 속도를 즐기면 된다.
다행히 날씨도 그다지 춥지않다.

 

트럭 한대가 앞질러 갔는데 한참 후에 저~기 아래 파란 벌레 되었다.

 

고개를 넘을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땀 펄펄 흘리며 올라가서는 내려 오는 것은 왜 순식간일까?

성공(뭐가 성공인지 잘 모르지만?)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과 힘이 들지만, 나락에 떨어지는 것은 순간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힘들다고 너무 힘들어하지 말고,

좋다고 너무 좋아 하지 말라는..경고인가

도덕경의 총욕약경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라가는 시간 만큼 내려 가보았으면 하고 항상 바랬던 소망을 이루다.

 

구비 구비 어디가 끝인지 모르게 물이 흘러 가는데로 길인지 물길인지 분간이 안간다.

 

빈 오두막이 몇채 물가 옆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해 질 무렵 저런 오두막이 또 나왔으면?

 

당장이라도 온 산을 태울것 같은 단풍이 너무나 붉고 정렬적이다.

마치 오늘 모든 생을 마감할 것처럼.

나는 이처럼 열정적으로 살고 있는가?

뭐 어때 그냥 적당히 길게 좋은데..ㅎㅎㅎ

 

서티벳과 달리 길은 잘 닦여져 있는데

차는 거의 안 지나가고
경사는 완만하고,
햇빛은 따사하고,
길 옆에는 노랑도 아닌 것이 초록도 아닌 나뭇잎들이 곱게 물들어 있다.

  

골이 점점 깊어진다.
예전에 티벳에서 네팔 넘어가는 니얄람~짱무 길이 떠오른다.

http://www.iwooki.com/photo2006/2006photo_7th.html

여기도 비 좀 내리면 여기 저기 산위에서 폭포가 당장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약간은 무서울 정도로 깊은 협곡

아까와는 달리 속도 내기가 무섭다.

어차피 빨리 간다고 많이 보는 것은 아니니깐 천천히 가자꾸나.ㅎㅎㅎ

 

경치에 눈이 팔려 아차하는 순간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다.
낭떠러지 쪽에서 멀칙히 떨어져 살금살금.

 

깊은 원시림 풍경

 

새야 너도 잠시 쉬어 간들 어떠하리. 

 

 도대체 저 멀리 언덕배기에 어떻게 집을 짖고 살았을까?
큰길에 나와 가까운 동네 마실이라도 한 번 갈라치면...
깊은 계곡은 어떻게 수시로 넘고, 다시 가파른 언덕을 올라야 할텐데..헥헥
불편함이 주는 고독 자유의 행복인가?
물론 저들 입장에서는 고독이란 말이 사치같지만 

 

둔지에 포실하게 자리 잡은 아름다운 마을
해가 뉘엇뉘엇하는데도 이 깊은 산골에서 이 마을만은 저녁 햇살을 듬뿍 받고 있다.
 

당장이라도 파란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맑은하늘
그 아래 솜사탕 같은 새 하얀구름
그 아래 웅장하면서도 포근한 산
그 아래 자리한 정겨운 마을
그 아래 모든 악을 집어 삼킬 듯 괴음을 내며 굽이쳐 흐르는 깊은 계곡
사소한 잘못 같은 것은 감싸줄 것 같은 이 모든 것을 비쳐 주고 있는 저녁햇살과
내 발 아래 계곡 옆 살포시 저녁햇살 물든 나무가 너무나 아름답다.
눈물나게 아름답다.

  

일 마치고 경운기 뒤에 찰싹 달라붙어 가는 아이들! 나도!
그립다.
어렸을 적,
가을걷이 끝나고 지푸라기 가득 싣은 구루마(소 달구지) 위에 벌러덩 누워 하늘 보고 집으로 가던 그 시절이 그립다.
해는 이미 지고 저녁 노을만 조금 남았다.
결국 하루 만에 내리막을 다 내려 오지 못하고 길에서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계곡 옆에 잠자리를 마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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