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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신이의 발자취] 영화 제작자 이우정 대표
“치열하게 싸운 분, 세상에 알리려 영화 기획”
지난 2018년 부산에서 있었던 고인의 결혼식 전날 명필름 출신을 비롯한 여러 영화인이 모였다. 맨 왼쪽부터 이우정 대표, 김경찬 작가, 김현석 감독, 이은 대표, 이종호 프로듀서, 김균희 프로듀서, 강명찬 프로듀서, 이기연 프로듀서, 심보경 대표와 딸, 심재명 대표, 김현철 제작자, 김주경 제작자, 박상연 작가.

영화 ‘1987’을 제작한 이우정 대표는 1988년 중앙대 국어국문학과를 입학했다. 전공보다도 탈춤반 ‘전통예술연구회’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그는 1996년 명필름의 첫 영화 ‘코르셋’의 제작부 막내로 영화 일을 시작했다. 탈춤반 선배이기도 했던 이은 명필름 대표와 만난 그 날 영화 현장에 투입된 이우정은 편의점에서 칫솔과 속옷만 사서 세트장으로 향했다. 어느 날 새벽 촬영 현장에서 “중앙일보 등 일간지 다섯부를 사오라”는 이 대표의 말에 이우정은 중앙일보만 다섯부를 사 왔다. 나는 우리 회사 첫 제작부 직원이 된 그를 보며 ‘쟤를 어쩌나’ 혀를 찼었다.

머리도 덩치도 키도 컸던 이우정은 그때부터 꽤나 노숙해 보였다. ‘고지전’의 시나리오를 썼던 박상연 작가는 그의 장례식장에서 “우정이 형이 제작부 막내였다는 게 상상이 안 간다”고 했다. 처음부터 영화사 대표가 어울리는 풍모였던 이우정은 지난 3월22일 새벽 55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너무 이른 죽음이다.

혈액암으로 7년여 투병 중 ‘1987’ 완성해

2016년 발병한 혈액암으로 7년여 투병했다. 그 와중 영화 ‘1987’을 완성해 개봉했고 오랜 연인과 결혼식도 올렸다.

영화 ‘1987’은 2017년 겨울 개봉해 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지구를 지켜라’ ‘화이:괴물을 삼킨 아이’로 일찌감치 재능을 알린 장준환 감독이 연출하고 김윤석, 하정우, 강동원, 유해진, 김태리 등 최고의 연기파 스타들이 대거 출연해 화제를 모았던 영화는 무엇보다 한국 영화계에서 1987년 6월 항쟁을 다룬 첫 상업영화이기도 했다. 다수의 주인공이 바통을 이어가며 주역을 맡았던 이야기는 6월 항쟁이 누구 하나의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모험적 플롯의 영화였다. 39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 38회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등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

이우정은 이 영화와 관련된 많은 인터뷰에서 “치열하게 싸우신 분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영화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막대한 제작비와 수많은 스태프가 투입되는 상업영화를 책임지는 제작자가 저 이유만으로 영화를 만든다고? 조금은 거짓말 같기도 한 저 우직한 소명의식은 적어도 그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생각한다. ‘1987’의 시나리오를 쓴 김경찬 작가도 “이우정 대표는 세상에 알리고 싶은 이야기를 만드는 데 진심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우정은 영화 제작자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어느 날 갑자기 ‘1987’을 한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역사, 사회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다고 할 수 있고 반대로는 다른 장르 영화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한 탓에 팩트 중심, 역사적 사실 중심의 구상이나 기획을 할 수밖에 없는 능력의 한계가 있다”라고 겸손하게 밝힌 바 있다.

문성근 배우의 제안과 연극계의 명장 이상우 연출가와 함께 한국전쟁 중 미군의 무차별 공격에 수백명의 양민이 학살된 노근리사건을 다룬 ‘작은 연못’(2010년)의 제작자로 명필름에서 독립한 이우정은 2011년엔, 1953년 휴전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는 시기, 한국전쟁의 또 다른 비극을 다룬 ‘고지전’을 제작해 31회 영평상 최우수작품상, 20회 부일영화상 최우수작품상 등을 받았다. ‘YMCA야구단’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프로듀서와 감독으로 만났던 인연의 김현석 감독과는 1970년대 대중가요계를 풍미했던 사람들의 이야기 ‘쎄시봉’(2015년)을 만들었다. 2020년엔 그의 유작이 된 양우석 감독의 ‘강철비2:정상회담’을 제작했다. 그의 말대로 참 일관된 경향의 영화들인 셈이다.

지난 3월24일 발인과 화장이 끝난 뒤 고인의 집에 모인 동료와 후배들이 고인의 영정사진과 함께 사진을 찍고 있다.

또 하나 특징은 검증된 영화인들과의 작업이었다는 점이다. ‘공동경비구역JSA’의 원작자 박상연 작가는 드라마 등으로 성가를 높이던 때 이우정의 제안으로 ‘고지전’의 시나리오를 썼고 영화 ‘카트’로 이름을 알린 김경찬 작가와 ‘1987’을 작업했으며 그와 영화를 만든 장훈·김현석·장준환·양우석 감독은 모두 재능과 역량이 이미 검증된 사람들이다. 이우정은 다소 어눌하고 어수룩한 말투와 태도로도 역량 있는 사람들을 묶어낼 줄 아는 제작자로서의 배짱을 가진 사람이었다.

노근리사건 ‘작은 연못’, 한국전쟁 ‘고지전’, ‘강철비2’ 까지

이우정은 후배들을 챙기고 아우르는데도 역할을 다했다. 영민하고 성실한 후배들은 그가 기획한 영화들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데 능력을 발휘했다. 언제나 그를 형이라고 불렀던 이종호 프로듀서는 “황소처럼 고집도 셌지만, 따뜻하고 너그러웠다”고 그를 회상했다.

그의 장례식장을 3일 내내 지킨 사람들도 모두 그와 함께 오랫동안 동고동락했던 동료이자 후배들이었다.

‘1987’의 김경찬 작가는 그와 함께 3편의 시나리오를 준비해왔다고 한다. 아직 채 만들지 못한 영화들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새삼 그가 너무 빨리 떠났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로 돈을 번 후 선배이자 상사였던 우리 부부에게 맛있는 밥과 술을 사주며 앞으로도 오래오래 술값을 내겠다고 해서 얼마나 기쁘고 기특해했는지.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벌써 떠났다는 게 못내 야속하다.

느릿한 목소리로 뚜벅뚜벅 걸으며 차근차근 영화를 만들었던 그가 왜 이리 빨리 갈 수밖에 없었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삶의 태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지만 죽음의 속도는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인 것인가. 선배가 후배를 기리는 이 글을 쓰면서 속절없이 그저 이우정 대표의 평안을 빈다.

심재명 명필름 대표, 사진 필자 제공

 

심재명 명필름 대표, 사진 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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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 ‘1987’ 제작자 이우정, 우직한 소명 남기고 떠나다 (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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