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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산지를 내려와 주차장에서 라면 한그릇 끓여 아점 떼우고,
고추 말리기 좋은 가을 햇볕과 바람에 밤 사이 이슬 젖은 텐트를 펼쳐 말리는 사이 평상에 누워 눈 좀 붙인다.
텐트 걷어 짐 싸고 출발 얼마 못가 사과 과수원 아줌마가 붙잡아 또 사과 실컷 얻어먹고 담고 하다 보니 피나무재를 한 낮에 넘게 되었다.

숨도 가쁘고 갈 길 바쁜데 아스팔트 도로 한 가운데 턱하니 자리 잡은 이 녀석들 보게나...
어느 봄, 척박한 저 곳에 어떻게 뿌리를 내렸을까?
한여름 그 찌는 아스팔트 열기는 어찌 참았을꼬?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혹독한 추위는 또 어떻게 견뎌낼까?
하지만 내년에도 숙명처럼 또 다시 그 자리에 새싹을 틔우겠지..

저들에게는 저 손바닥만한 공간이 온 세상이겠지?
마치 대우주에 비하면 손바닥보다도 좁은 지구가 우리에게는 온 세상인 것처럼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척박한 공간에서 그 누구의 돌봄 없이도 이어지는 저 꿋꿋한 생명력에 절로 경탄의 웃음이 난다.

 

 

 

피나무재 넘어 가는길...
고개를 만나면 항상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게된다.
"얼마 안 높아!", " 짧아"," 저 구비만 돌면 끝이야!, 힘내!"

매번 "다시는 따라 오는가 봐라!"  투덜 대며 속으면서도 함께 해 주는 아내
"누가 뭐래도 그대는 꽃보다 아름다워~~~"

 

 

 

잠시 쉬려고 멈춘 곳에 야생화가 한참 꽃을 피웠다.
한 녀석은 달개비고, 또 하나는 ? 
길가 흔히 피는 꽃이지만 자동차로 여행했더라면 그냥 스쳐 지나가 버렸을 순박한 꽃.
속도에  너무나 중독된 우리.
아무리 빨라져도 그 느낌은 잠시 순간이고, 마치 마약중독 처럼 이내 내성이 생겨 더 빨리 더 빨리를 왜치고 느림에는 마치 금단증상을 보인다.

느림은 마치 인생의 "뒤처짐"으로 각인되어 버렸다.
요즘 애들만 보더라도,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한글, 산수는 기본에 영어까지...
그렇게 빨리가서 뭐하려 하는가?
현기증나는 초고속 인생열차에서 내려 한가로이 거닐고 싶다.

 

 

 

길옆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절벽들

 

 

 

피나무재 넘어부터는 계곡물 따라 한가롭기 그지 없는 완만한 내리막이다.
한 차로 온전히 차지하고 아내랑 오손 도손



 

 

아내는 극히 평범한 풍경을 왜 찍냐고 묻는다.
지극히 평범한 풍경인데도
파란 하늘이 내 눈도 맑아지고
흰구름이 내 마음도 덩달아 들뜨고,
산들 산들 부는 바람에 춤추는 초록나무들에 나도 흥겹다.
이 모든 것이 조화로운 풍경이 어찌 아름답지 않은가...

 

 

 

얼음골 약수터앞 기암절벽
한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얼음골.
그 이름이 헛되지 않는 듯 싶다.
꽐꽐 시원하게도 쏟아지는 물에 잠시 손을 담가보는데 채 1분 견디기 힘들다. 
내 생애 이다지도 차가운 약수물은 처음인 듯 싶다.

 

 

 

계속해서 경탄을 자아내는 기암절벽들의 풍경이 물길을 따라서 이어진다.

 

 

 

옥계계곡의 시작.
저 물빛을 뭐라 해야 할까?
숲빛을 담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숲이 물 빛에 물들었다고해야 하나.


계곡물이 너무나도 맑아 수영으로 열기도 식힐 겸 쉬었다 가기로 한다.
둘다 처음에는 옷이 젖으면 뒷 일 감당하기 꺼려 물가에서 발만 담그고 주저한다. 싱겁다. 
에라 모르겠다...열기에 지친 나 먼저 퐁당 들어가서 신나게 수영하니, 따라 들어와 신났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

 

 

 

이번 여행 길에서 내심 가장 기대하던 길의 시작
마치 한 번 들어서면  다시 나오기 힘든 거대한 계곡 숲으로 빨려 들어 가는 것만 같다

 

 

 

'옥계' 어찌 그 이름을 함부로 지어겠나.
그 이름이 아깝지 않다.

 

 

 

비포장 고개를 넘고 나니 또 다른 세상이다.
물이 맑기로서니 어찌 저리도 맑을까?
물속에 얼굴을 집어 넣으면 물고기와 눈을 마주칠 정도로 물이 맑다.

 

 

 

계곡에 들어 서기 전까지도 인적이나 차가 드물었지만.
비포장 산길을 넘고 나니 길도 좁아 지고
이제 아예 차도 인적도 없다.

 

 

 

물을 거스르듯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 간다.

 

 

 

마치 어딘가 깊숙히 숨겨 놓은 보물을 찾은 것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여러번의 물을 건너고 산고개를 넘고 나서야 아스팔트를 만나게되었다.
도로를 만나고 나니 해가 바삐 산을 넘어 가고 있다.

 

 

 

계곡을 빠져나오니 해는 이미 지고 거리가 솔찬한 심재를 넘어야 하는데.
에라 관더라. 차를 얻어 타자꾸나.
친절하게도 두대의 자전거와 짐을 포항까지 싣어주신 아저씨의 적극 추천으로 
포항의 명물 고래고기를 처음으로 맛보게 되었다.
가격이 너무 비싸 딱 술 안주정도로 맛뵈기만  보았지만 그 독특한 맛이 나는 참 좋은데 아내는 별로인가 보다.

 

하루종일 고되게 자전거 타서 피곤도 할텐데.
그래도 술 한 잔 걸치고 나니 살짝 붉게 달아 올라 웃음 짓는 아내.

 

 

 

동해안 최대 재래시장 포항죽도시장
아저씨가 또하나 극추 한 게 물회..
죽도시장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이명박도 다녀간 물회집이 있으니 꼭 맛보고 가라신다.
유명세만큼 시끌벅쩍하고 입구부터 이명박 사진으로 도배 되어있다.
음식은 무엇보다 맛에 자부심을 가지고 정성을 다했으면 좋으련만.
맛은 그럭 저럭, 가격은 왜그리도 비싼지...

 

 

 

경주 포석정.
자타 풍류에는 일가견이 있다 싶은데. 
옛 선조들의 풍류를 쫒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물 위에 술 잔을 띠울 생각을 어떻게 했을까?ㅎㅎㅎ
그것도 과학적으로 물의 흐름을 파악하여 미학적으로 저렇게 아름답게 설계하다니 감탄이 절로 난다.

 

 

 

 

 

 

경주는 자전거 전국일주 후 17년 만이다.
아내도 고등학교 수학여행 이후 처음이란다.
둘다 그때나 지금이나 별 감흥이 없는 것 같다.
감상이고 뭐고 떼거리로 몰려 다니며 정신 없게 만드는 수학여행무리에 쫓겨 피해 다니기 바쁘다.

 

 

 

누각 아래 야영을 하게 되었다. 
원래 토함산 남쪽 고개 넘어에 자리한 자연 휴양림에서 야영하려 했는데 경주시내에서 여유를 부리다가 그만 긴 고개를 오르다 노을을 보고 말았다.


어렵사리 저녁 늦게 도착한 휴양림, 그런데, 야영장은 입구에서 또 1키로 비포장 어둠길을 올라 가야 한다.
더군다나 저녁에는 제법 쌀쌀한 날씨인데도 야영장에는 따스한 물도 안 나온단다.
나야 그럭저럭 됐지만 아내만이라도 따뜻한 물에 잠시 씻을 수 있도록 부탁하는데 매몰차다. 나그네한테 인심 참 박하다.
가격도 조그만 텐트 치는데 꽤 비싸다. 그러면서도 카드도 안되고 현금 영수증도 안된단다.
이래 저래 실랑이 하다 결국 여행 기분만 상하고 나와 버렸다. 막상 컴컴한 한 밤중에 야영자리를 찾다 보니 고개 넘다 봐둔 누각에 야영을 하게 되었다.


덕분에 반딧불도 보고...추억거리 하나 더 만들어 버렸다.

 

 

 

석굴암(석불사) 
새벽 동이 트기전에 출발하여 석굴암에서 일출을 보려 했으나 새벽3시에 누각 바로 옆에서 행해진 모기업의 극기훈련 때문에 잠을 설쳐 늦잠을 자고 말았다.


그래도 아직 이른 시간인지 관광객이 붐비지 않아서 한 동안 조용히 감상할 수 있었다. 경주를  다시 찾은 가장 큰 이유.
17년이 지난 지금도 본존불의 근엄하면서도 포근한 그러면서도 모나리자보다 더 오묘한 미소는 변함이 없다.

일제강점기 부실 복원 때문에 앞이 유리로 막혀 더 가까이 볼 수 없는게 너무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다행히 최근에 복원 당시의 원판 청사진이 발견되었다 하니 빨리 저 거추장스런 유리를 없애버리고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나오는 길에 깃발아래 일본 여행객들이 몰려 온다. 그들은 알까?
그들 조상들이 석굴암을 비롯해 수많은 우리 문화 유산에 행한 몹쓸짓을... 

 

 

 

경상도 여행을 하면서 대략 맛집기대는 접었는데 그래도 아내는 끈질기게 이대로 떠날 수 없다고  제대로 된 밥 한 번 먹고 떠나잔다.
아내의 집념 덕에 잘 먹고 떠나게 되었다.  가격도 저렴하고 반찬도 경상도답지 않게 다양하고 맛도 깔끔하다.
그냥 떠났다면 경주를 맛집 하나 없는 도시로 영영 기억하게 되었을 텐데 다행이다.


다음편 예고..이것으로 아내와의 1차 자전거 여행을  마치고
경주에서 버스로 대구 함양 거쳐 생초면으로 이동  지리산 둘레를(요즘 TV나 인터넷에 떠도는 둘레길과 전혀 상관없는, 말 그대로 지리산 둘레) 자전거로 지인들과 함께 한 여행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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